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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건너오다

건너오다
  • 저자김현우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6-12-28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1-17)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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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S 《다큐프라임》 《지식채널e》 연출가이자

    존 버거, 리베카 솔닛의 번역가 김현우,



    17개국 38개 도시의 ‘경계’를 건너고 ‘틈’을 여행하며

    그가 통과한 실감의 세계!



    다큐 피디와 번역가, 뜯어보면 묘하게 닮은 직업이다. 전자는 시공간을 한껏 확장시켜볼 수 있는 데 반해 후자는 텍스트라는 응축된 공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비슷하다. 바로 ‘읽어내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전자는 세상사·인간사의 틈을 섬세하게 관찰해 영상으로 담고, 후자는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행간에 배어 있는 미묘한 차이까지 길어낸다. 지성과 감수성, 관찰력과 판단력을 고루 요하는 일이다.

    여기 이 두 가지 일을 모두 직업으로 삼은 이가 있다.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 ‘화석’을 소재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생명체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되짚어본 《생명 40억 년의 비밀》(방송통신심의위원회 2011년 11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 '인간의 성장은 끝이 없다’라는 주제 아래 내레이션 없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인터뷰만으로 채운 《성장통》과, 아픈 속살을 드러낸 학교를 찾아가 현장의 치열한 고민을 담아낸 《학교의 고백》(제25회 한국PD대상 TV작품상 교양정보 부문 수상)은 모두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이다. 공통점은 연출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존 버거의 『행운아』 『A가 X에게』 『사진의 이해』,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니콜 크라우스의 『그레이트 하우스』 등 섬세하고 이지적인 작가들의 번역가 또한 같은 사람이다. EBS 피디이자 번역가 김현우.

    『건너오다』는 김현우 피디가 다큐멘터리 기획 및 촬영을 위해, 그리고 그 사이사이 여행다운 여행을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기록한 글을 모았다. 많은 출장지 가운데 17개국 38개 도시를 추렸으며,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처럼 익숙한 곳부터 미국의 로렌스, 앤아버, 미줄라와 호주 마운트아이자, 필리핀 아닐라오 등 다소 낯선 곳까지 포함되었다. 그가 십 년 넘게 꾸준히 번역해온 작가 ‘존 버거가 살고 있는 오트사부아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기억되는 프랑스 안시와, 가장 최근 연출작 《김연수의 열하일기》의 배경이 된 중국의 변문진과 진황도 등의 기록도 담겼다.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이름들이다. 저자는 이 익숙하고도 낯선 곳들에서 삶과 사람, 세상의 다양한 ‘경계’를 건너고 ‘틈’을 여행하며, 그것에 대해 읽거나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실감’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_김연수(소설가)

    “사람의 이야기를 찾는 여행자라면 이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길을 떠나도 좋을 것이다”

    _조해진(소설가)



    김현우 피디가 기록해내는 세계는 하나의 질문으로 대변할 수 있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가 그것이다. 여기서 ‘당신’에는 ‘나 자신’도 포함될 것이다.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 있는 이들에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이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다른 이에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 ‘바늘’ ‘손가락’ ‘불’ ‘바람’, 이런 평범한 단어들에 세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육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개인의 언어들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한 단어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가지는 의미와 그 이유를 이해하는 상상력을 훈련하는 과정. 하지만 어떤 의미는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벽 너머에 있어, 도저히 함께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벽이 있음을 인식하면, 상대를 이해해보려 정성을 다해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성격에 따라 냉소적이 되거나 겸손해진다. 그 아이와 인터뷰하기 전까지 나는 겸손하지 않았다. 청주맹학교 아이들이 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모두 나의 상상 밖이었고, 출발 전의 걱정은 오만이었다. 두 눈 멀쩡한 사람이 볼 수 없는 세상도 있다. 그 사실을,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보여’주었다.

    -158쪽, ‘태국 치앙마이 | 보고서도 보지 못하는 것’



    몇 해 전 그는 청주맹학교 학생들과 함께 치앙마이에 갔다. 태국 엘리펀트 네이처 파크에서 맹인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밥도 주고, 씻겨도 본 뒤 자기가 경험한 코끼리를 찰흙으로 빚는 모습을 촬영했다. 눈도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의 풍경을 담으며 저자는 촬영을 떠나기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 되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마주하고 있는 단동은 ‘경계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소설가 김연수와 『열하일기』의 여정을 되짚어가는 와중이었다.



    경계는 서로를 배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은 경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리는 결정에 따라 그어진다. 하지만 그 경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선은, 그 배타성은 삶의 조건, 혹은 또다른 기회일 뿐이다. 경계만큼 또렷하지 않기 마련인 삶은, 그렇게 먼 곳에서 그어놓은 선처럼 매끈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런 삶은 강사장의 사업 물품이 바뀌듯이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인다. 늘.

    단동을 떠나는 날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새벽 네시에 호텔을 나섰다. 압록강을 따라 달리는 강변도로에 새벽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일 뿐,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사람이 빠져서일까, 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은 전날 낮에 봤던 것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역시 사람이 없어서일까? 조용한 도로와 정박해 있는 배들, 아직 사람들의 시간이 시작되기 전의 그 풍경은 공평하게 어두웠다. 그 시간엔 경계 이쪽과 저쪽이 나누어져 있다고 할 수 없었다.

    -232쪽, ‘중국 단동 | 경계를 사는 사람들’



    오키나와에서는 히메유리의 탑에 들렀다. 전투에 동원되었다가 죽은 열세 살에서 열아홉 살 사이의 여학생 백삼십여 명을 기리는 곳. 김현우 피디는 그곳에서 ‘주변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주변인은 늘 희생당한다는, 주변의 개인들은 개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개념, 혹은 숫자로만 파악된다는 생각”에 오키나와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여학생 개개인의 이름이라고. 저자는 이런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오키나와의 역할일 것이라 본다.

    눈앞에 드러난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닌 그 현상을 만들어낸 환경의 역사, 개인의 역사를 섬세한 감수성으로 ‘의식’하는 그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물론,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사실은 모두 나 자신을 깨우고 내 세계를 확장시키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실에 가까워진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풍경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떤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여행이 늘 인생에 새로움만을 더하는 건 아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 흥분시키는 것뿐 아니라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비우고 비웠을 때 내 안에 남는 것을 대면하곤 한다. 낯선 언어와 기후와 사람들, 그 ‘낯섦’이 주는 대답은 외려 후자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다. 김현우 피디처럼 사십대 초반이라는 본인의 나이가 삶의 마디 가운데 어디쯤인지 예민하게 짚어본다면 더욱더 그 대답에 귀를 기울이리라.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시기가 청춘이라면, 나의 청춘은 아마 지나간 것이리라. 언제부턴가 나의 모습에 어떤 새로운 면모를 더하려는 노력을 멈춘 것 같다. 대신 내게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한다. 나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결단은 필요하다. 환경이 변하고, 그렇게 변하는 환경에서 계속 나로 남을 수 없다면 그 환경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결단을 고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나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나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시기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감이란 ‘몸으로 느낀다’라는 의미이다.

    _211쪽, ‘일본 도쿄 | 뿔 난 삼엽충이 될 것인가, 몸집을 줄인 삼엽충이 될 것인가’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나도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그림 앞에서 ‘나의 몸이 떠올린 내적 기억’들이 그 말로 이어졌다. 구구절절 그 사연들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환한 빛’만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고, 그 빛이 꺼진 후 어둠 속에서 지내던 시절도 있었으며, 이제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상태를 인정하고, 그림자에 가린, 그 어두운 부분까지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는 것임을,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음을 알고 그 둘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게 되고 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속 표정이 그저 체념의 표정만은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는 온통 과거만을 향한 문장은 아닌 것이다. 그 마음도 여전히, 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기대’가 없이도 다가올 날들을, 혹은 남은 날들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그렇게 환하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던 자신과 비로소 화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249~250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김현우 피디는 나를 나로 마주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삶은 영원히 뒤틀리고 말 것”이라고 한다. 내 안의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잘 보듬고 그 외의 것들은 비울 수 있어야 또 타인의 이야기를 위한 자리가 생기리라.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 내 안의 경계가 넓어지리라.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매우 자주 지치기도 하지만, 경계를 넘어가는 동안의 현기증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고맙게도 함께 건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손을 꼭 쥔 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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