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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저자김보통
  • 출판사문학동네
  • 출판년2017-09-12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8-01-17)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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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만자』 『DP 개의 날』 김보통 첫 에세이

    매달 말일 확실하게 입금되지만

    매일 아침 명백히 불행했던 회사원의 삶…



    온 힘을 다해 그 길에서 도망친

    퇴사자 김보통의 비범한

    방황기



    백업해줄 조직도, 실패를 감당해줄 가족도 없는

    대한민국 보통씨가 퇴사 이후 맞닥뜨린 것은,

    막막함, 죄책감, 슬픔 그리고 빈곤…

    그 길 끝에서 그가 찾아낸 한줌의 빛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온라인에 이상한 ‘보통’ 사람이 나타났다. 자신을 그냥 ‘김보통’이라 불러달라고 한 그는 하루종일 사람들의 프사(프로필 사진)를 그림으로 그렸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이유도 없이.

    “누구세요? 왜 이런 일을 하세요?”

    “그냥,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서 도망쳤습니다.”

    담담하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색감과 인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일반인들을 묘사한 김보통의 그림은 화제를 모았고, 트위터는 ‘김보통 그림’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데뷔 직후 『아만자』『DP 개의 날』 등의 작품으로 ‘오늘의 우리 만화 대상’ ‘부천만화대상 시민만화상’을 휩쓴 만화가 김보통의 ‘특별한’ 시작이었다.

    만화가가 되기 전, 그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IMF로 망해버린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이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족의 숨통을 조이는 짐승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은 기어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낸다. 그로부터 4년 후,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4년 동안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책이 없구나. 넌 불행해질 거야”라고 경고했음에도 왜 그는 안정된 조직을 벗어나 ‘길이 아닌 길’로 달려가야만 했을까?

    이 책은 퇴사 후 마침내 자유와 자아를 찾아냈다는 숱한 ‘퇴사 신화’를 다룬 책들과 전혀 다른 노선을 걸어간다. 빽도 돈도 없이 퇴사한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막막함, 죄책감, 불안과 빈곤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회사를 나온 그는 과연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더는 백업해줄 조직도, 실패를 감당해줄 가족도 없는 대한민국 보통씨가 퇴사 후 맞닥뜨렸던 고난과 가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자, 그 기나긴 방황의 여정 끝에서 마침내 손에 쥔 한줌의 빛에 대한 이야기이다.





    “회사 못 다니겠어. 도대체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

    이젠… 진짜 싫다고.”

    이젠 더 견딜 수 없어진 당신에게―”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IMF로 여느 평범한 가정들이 숱하게 망해갈 때 김보통의 집안도 무너졌다. 유일한 희망은 장남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집안을 살려내는 것뿐이었다. 대기업 회사 배지를 옷깃에 달게 되었을 때, 김보통은 생각한다.

    ‘끝이다. 고생도, 가난도, 이 지긋지긋한 짐승의 삶도 끝이다. 이제 나는 사람이 된다. 드디어 나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입사 후 회사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생긴다.



    그 무렵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당시 아파트 13층에 살고 있었는데,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쯤에서 떨어지면 한 방에 죽겠는데.’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많이 피곤한가보다’ 싶어 의식적으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치는 도로의 신호등 앞에서, 지하철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눈앞이 하얘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이거면 확실히 죽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저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 싶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마치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45~46쪽)



    확실하게 돈은 벌지만, 분명하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삶. 회사원 김보통에게는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회사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아침 9시인데 오전회의가 새벽 6시 50분에 열렸다. 회의는 부장의 긴 모노드라마에 가까웠다. 일과시간 내내 회의를 해놓고는 저녁에 회식을 소집했다. 회식은 자정이 되고 새벽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방금 전에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그토록 아들이 대기업에 가길 소원했던 보통의 아버지는, 말기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기업 다니는 아들은 아픈 아버지를 보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퇴근시간마다 회식을 소집하는 상사는 장군처럼 외쳤다. “본인 사망 외에는 열외 없다!” 일하려고 입사했는데, 제발 일만 했으면 좋겠는데, 회사는 삶마저 송두리째 요구했다.



    “이 잔을 비우고, 저 잔을 받고, 건배를 해서 이 술을 모두 없애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있을까. (…)

    뚝, 하고 눈물이 흘렀다.

    이 좋은 날, 남들처럼 웃지는 못할망정 울고 있었다.

    “야, 너 왜 울어.”

    상무가 물었다.

    차장이 나를 노려보았다. “세상 모든 아빠는 다 죽어. 우리 아빠도 죽었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씨발새끼야.” (214쪽)



    김보통은 생각한다. 대체 나는 지금 무얼 바라,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돌아가, 바다는 네가 살 곳이 아니야.”

    불안한 자유 위에서



    퇴사를 결심한 그에게 무수한 조언들이 쏟아진다.

    “회사라는 게 말이야. 안에서는 그 고마움을, 든든함을 잘 몰라. 나가보면 알게 되는 거야. 이 시스템이 지금까지 얼마나 나를 보이지 않게 보호해주고 있었는지를. 이 견고한 시스템을 벗어난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재밌는 게 뭔 줄 아냐? 다들 후회해. 나가보면 아무것도 없거든. 나를 백업해줄 조직도, 내가 내세울 간판도. 현실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가혹해.”

    그는 선배에게 말한다.

    “그냥 도망치는 거예요… 도망치는 거라고요. 잘되고 말고는 상관없어요!”

    그래서, 그는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 뼛속까지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대한민국을 떠나 그는 따뜻한 오키나와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퇴사 후 여행에서 ‘평생 동안 모르고 살던 나 자신에 대한 통렬한 성찰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팔아먹기 좋게 편집되고 가공된 예쁜 허구’였음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놀라운 깨우침을 주는 그 누군가를 만나지도 못했다. 다만 자신이 원했던 건 거창하고 위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조금 걸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 그리고 지금 자신이 다시 입사 이전의 원점으로 돌아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대책을 찾아내야만 하는 실업자가 됐음을 실감했을 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여느 퇴사자들처럼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쫓는 여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이참에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작은 도서관’을 열기로 한다. 정사서 자격증이 있었고,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으며, 어느 정도의 조건을 갖추면 정부 지원도 조금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의 절반을 털어 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의 집안에는 서점에서 날아온 택배상자들이 수북이 쌓여간다. 그러나 간절하게 열고 싶었던 ‘작은 도서관’의 문마저도 ‘돈’ 없고 ‘경력’ 없는 이에게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망해가는 치킨집 자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외진 곳 외에 그가 빌릴 수 있는 가게 자리는 없고, 정부 지원도 허망하게 물 건너간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인 책상자들 사이에 갇힌 그는 초조해진다. 그의 인생을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대학원에 들어가겠다고 둘러대보기도 하고, 유통업에 뛰어들어볼까 발품을 팔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 그의 자리는 없다. 아무데도, 없다.



    “수족관에서 살다 바다로 나오니 어때? 죽겠지?”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매우 비굴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넓고, 바닥이 어디까진지 모르게 깊고, 파도는 계속 몰아쳐오고, 물은 짜고, 시퍼런 바닷물 속엔 상어에 고래에 뭐에 득실득실하고. 바다,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지? 죽겠지?”

    “그래. 죽겠네.”

    “돌아가.”

    친구는 다시 말했다.

    “바다는 네가 살 곳이 아니야.”

    나는 우물거리며 “안 돼” 하고 말했다.

    “전화해. 인사과 사람이든 뭐든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빌어. 내가 잠깐 미쳤나보다고. 한 번만 물러달라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

    “못해. 이제 다 끝났어.”

    “그럼 죽어.” (140~141쪽)





    사회가 폐기 처분한 식빵맨

    어떻게 해야 이 빈곤의 입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퇴직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식비를 줄여야 한다. 실업자 김보통은 밥 대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유 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자 시리얼을 우유에 조금만 적셔 ‘비벼먹는다’. 하지만 돈이 너무 든다. 커다란 식빵을 하나 사서 며칠에 걸쳐 찢어먹는다. 처음엔 잼이나 땅콩버터를 발라 먹기도 했지만, 돈 들어올 구멍 하나 없는 백수에게 그것은 사치일 뿐이다. “의식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져간다. 조직이 없고 돈벌이가 없는 김보통은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처럼 ‘인간다움’의 영역에서 서서히 배제되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리는 귀를 덮을 정도로 자랐고 수염은 보름 넘게 깎지 않아 덥수룩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 피어난 곰팡이를 뜯어내고 있었다. (…)

    어찌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빈곤의 입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와 어떤 지원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걸어가 곰팡이를 뜯어낸 식빵이 담긴 봉지를 들었다. 아직 반은 남아 있었다. 쓰레기통을 열어 미련 없이 식빵 봉지를 버렸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탕수육 소자에 짜장면 하나요.”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 어설프게 장사니 사업이니 해보지도 않은 일에 돈을 쓰는 건 그만하고, 다시는 대학원이니 뭐니 원치도 않으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기웃거리지도 말자. 그저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오래간만에 먹는 탕수육 맛은 끝내줬다. (173~175쪽)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시작해보겠다는 이 작은 생각의 전환은, 골방에서 시들어가던 김보통의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상한 식빵 같은 위축된 실업자로서의 삶을 내버리고, 자신에게 밥보다 중요한 달콤한 즐거움과 자존감을 선물하기 위해 브라우니를 구우면서 사람 구경을 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재잘재잘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림을 그린다. 김보통의 메일함에는 자신의 얼굴도 그려달라는 메일이 쇄도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이 저려올 때까지 우리 주변에서 울고 웃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그림을 그렸다.



    불현듯 어떤 분이 사진과 함께 보낸 쪽지가 떠올랐다.

    “작가님. 제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 아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드리니

    마지막 가기 전에 볼 수 있도록

    그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44~246쪽)



    이 책에는 그 시절의 김보통이 그린 ‘보통 사람들’ 그림 600여 점 중 200여 점이 열 페이지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이 있다. 별나게 예쁠 것도 없고 잘나지도 않은 평범한 인물들이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있는 그림일 뿐이지만, 이 그림들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 얼굴들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바로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담담하게 아름답고 슬픈 열 페이지의 드라마는 이 책에서 가장 눈부신 페이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사람들은 김보통에게 그때 왜 그렇게 쉬지도 않고 미친 사람처럼 그림을 그렸느냐고 물었다. 대체 어쩔 작정이었냐고, 계속 돈은 못 벌고 그림 달라는 사람들만 늘어나면 어떡할 셈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책에서 비로소 답한다.



    나의 대수롭지 않은 그림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 혹은 회복의 입구에서, 탄생의 순간부터 이별의 아픔까지, 망각하지 않기 위해 또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내 보잘것없는 그림을 기다리는 분들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분명 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머물지 못해 떠나버리는 분들이, 기억되지 못한 채 잊혀갈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여유 부리지도 못했습니다. (246쪽)



    빈곤의 입구에 섰던 김보통은 결국 〈아만자〉로 데뷔해 만화가가 되었다. 그래서 퇴사자 김보통씨는 결국 행복해졌느냐고? 이 책이 해피엔딩이냐고? 아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말자. 행복이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하다. 그 손에 잡히지도 않는 거창한 행복을 잡아보겠다고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오늘의 나를 갉아먹으며 살았던가. 그가 바라는 것은 다만,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오늘의 불행으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쳐, 그저 지금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4년 전 회사를 떠나며 생긴 버릇 중 하나는 매일같이 ‘지금 나는 불행한가?’에 대해 자문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망하고 있는 과정중에 있는 것일지 모르고, 그래서 언젠가 결국 불행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나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당장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매일매일 불행에서 도망치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저 한 마리 크릴새우가 해류를 따라 흘러가듯 거대한 혼란 속에서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고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새우로서 살아간다. 싫은 것들을 피하며 가능한 한 즐겁게.

    운이 좋다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행복할 수 있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 _에필로그에서



    프롤로그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던 김보통의 캐릭터는 에필로그에 이르러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다. 아직, 불행하지 않은 김보통은 지금 그렇게 희미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쓰고 그려나가고 있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에세이이지만, 우리 사회의 조직문화와 회식문화, 과로와 야근, 그리고 끝내 이것을 버텨내지 못한 한 젊은 청년이 실업자가 되었을 때 빈곤의 수렁으로 순식간에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서늘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것은 삶, 에 대한 이야기이다. 접대를 위해 훌라춤을 추고 탬버린을 흔들고 잠도 못 자고 과로하며 좀비처럼 출퇴근길을 오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째깍째깍 흘러가는 딱 한 번뿐인 우리들의 삶. 그 소중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이 살에 닿을 듯 절절한 퇴사자의 고백을 다 읽은 후에,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미래를 위해 달리고 있는 내 삶은 ‘오늘’ 괜찮은가. 혹시 오늘 아침 출근길의 나는 불행하다고, 이러다 죽을 것 같다고 절규하진 않았는가.



    눈물이 났다. 방금 전에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해야 했다. 몇 시간 전 강남대로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아탄 선배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웃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하나 납득할 수 없는 삶들이 너무나 평범하게 존재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수많은 부조리와 불합리를 평범함으로 받아들이며 평생을 바쳐 일해, 궁극적으로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으로 생의 의미를 부여받는 평범씨들. 단지 집 없이 평범하게 태어났다는 죄로 죽을 때까지 벌을 받듯 일해야 하는 이곳은 지옥이라 불러야 마땅할 터인데, 평범씨들에겐 그저 ‘우리나라’였다.

    너무나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별수없잖아, 어쩔 수 없잖아, 모두가 이렇게 살잖아 하며 독서는커녕 잠잘 시간도 없이 살지만, 거래처 접대를 위해 밤새 훌라춤을 추며 탬버린을 흔드는 것으로 흘려보내는 우리의 이 삶이



    딱 한 번인. 생이면서,

    딱 한 번 인생

    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그것이 내 예명이 ‘김보통’이 된 이유다. (274~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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