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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종교이론

종교이론
  • 저자조르주 바타유
  • 출판사문예출판사
  • 출판년2016-11-18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6-12-26)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 TTS 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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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이론》 개정판 출간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이론》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수단으로서의 인간과 그로부터의 초탈을 위한 인간의 행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제2부는 이윤의 원칙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폭력을 현실적 목적에 종속시키는 근대 산업사회 이후의 군사적 질서에 대한 비판이다.



    사상을 벽돌담의 벽돌에 비유하는 바타유는 하나의 철학이 철학일 수 있으려면 인류의 사상사에서 그 다음에 있을 철학적 논의들에 대한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벽돌이 쌓이고 쌓여 돌담을 이루듯이 철학도 쌓이고 쌓여 사상의 담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무한조립은 불가능하며, 어떤 철학자는 새 집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또는 철학적 답변은 개인적 입장을 무시할 수도 있고 이전에 있었던 또는 이후에 올 어떤 사상적 흐름에도 가슴을 활짝 열고 거역할 수 있다. 사상적 불만, 미완성은 답변과 관계있으며. 더 나아가 답변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이론》을 쓰는 바타유의 화두는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나는가?’이다. 바타유는 인간도 동물성, 사물 또는 도구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도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목표와 관계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우리는 여기서 언어의 가장 두드러진, 가장 심각한 탈선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도구를 사용해서 어떤 것을 생산하지만, 그 생산물은 다시 다른 어떤 것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리는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삽으로 땅을 파고 거기에 식물을 재배한다. 거기서 생산된 작물은 누군가가 먹는다. 그러나 다시 그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농산물과 가축은 사물들이며, 사육과 경작의 순간만큼은 경작자, 사육자도 사물들이다. 그 세계에 속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수단이다. 경작자는 인간이 아니다. 경작자는 빵을 먹는 사람의 수단인 셈이다. 바타유는 수단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을 전쟁, 종교, 제사, 축제에서 찾는다. 살상이 자행되는 전쟁은 얼핏 축제가 갖는 의미와 유사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축제는 큰 차이가 있다. 축제는 적을 사물 취급하지 않지만 전쟁은 적을 사물 취급한다. 전쟁은 개인의 생명과 그 가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반면, 살아남은 개인을 그 위험한 놀이의 수혜자로 만든다. 다시 말해 전쟁은 살아남은 병사를 초라한 사물로서의 개체가 아닌 영광스런 개체로 승화시켜준다. 그러나 바타유는 실아 남은 병사의 영광을 허위의 영광으로 규정한다. 병사는 폭력을 통해 인류를 전적인 사물의 질서로 환원시키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무의식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병사의 그러한 태도는 주로 현실적 질서의 우세를 돕는다. 병사가 차지하는 신성의 권위는 세계를 유용성으로 끌어내린 뒤 얻은 거짓 권위이다. 바타유는 병사의 품위를 창녀의 웃음에 비유한다. 군사적 정복의 정신은 희생의 정신과는 반대이다. 군사적 질서의 왕은 내부의 폭력을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폭력을 철저히 바깥으로 돌린다. 군사적 질서는 그렇게 함으로써 폭력을 현실적 목적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적 질서는 축제와는 달리 힘의 최대 소비를 목표하지 않는다. 힘의 소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사적 질서의 원칙에 의한 힘의 소비는 기껏해야 이윤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의 힘의 소비로서, 단지 더 큰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바타유는 종교도 이러한 군사적 질서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며, 그 예로 이슬람을 든다. 바타유에 의하면 이슬람은 군사적 힘과 정복을 최종 목적으로 삼지 않는 행동을 볼 수 없는 엄격한 군사적 질서의 종교이다.



    그러나 축제 또는 제사는 다르다. 제사는 미래를 염려하는 생산의 반대 명제이며, 오직 순간에만 관심을 갖는 소모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제사는 버리고, 주는 것이다. 석탄이 타는 화로는 대체적으로 부인할 여지가 없는 유용성을 갖는다. 반면 제사에서 제물은 그런 모든 유용성을 벗어난다.



    제사의 정확한 의미를 찾자면 바로 이와 같다. 우리는 사치품을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것을 제사 지낸다. 또한 제물이 이미 손상된 것일 때는 제사란 있을 수 없다. 사치품이란 제작을 위한 노동의 유용성을 애초에 제거시켜버린 물건이다. 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사치품은 유용성을 잃는다. 사치품을 제사 지낸다면 그것은 같은 대상을 두 번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



    그런가 하면 축제는 사람들을 모아, 그들에게 전염성이 강한 제물의 소모(영성체)를 통해 제한적 의미의 지혜와는 정반대의 불길을 향해 문을 열게 하는 것이다. 축제는 파괴적 열망을 분출시킨다. 춤, 시, 음악 그리고 다양한 예술들이 축제를 웅장한 폭발의 시간과 장소로 만든다. 폭발의 순간, 수단에 종속되었던 인간은 비로소 수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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